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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의 해의(解義)

킴칸 2010. 8. 21. 10:32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의 해의(解義)

  • 글쓴이: rhdrhd
  • 조회수 : 52
  • 08.09.0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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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의 해의(解義)

 

 

동의학(東醫學)의 양대산맥(兩大山脈)의 맥락(脈絡)이라 할 수 있는 황제내경(黃帝內經)과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은 그 발생지역(發生地域)이 다르고 발전과정(發展過程)이 달라 흡사 수레의 양 바퀴같이 되어 동의학(東醫學)의 주류(主流)를 이루어 왔다. 전자(前者)는 황하유역(黃河流域)의 유목민(流牧民)을 다스리는 귀족계급(貴族階級)에서 이루어져 양생(養生)과 신선류(神仙流)를 추구하고 후세(後世)에 지나치게 양생(養生)위주로 발전되어 오히려 공리공론(空理空論)에 빠져서 실제임상과는 유리되게 되었고, 후자(後者)는 안온(安溫)한 아열대지방(亞熱帶地方)의 열성유행병(熱性流行病)의 창궐로부터 인명(人命)을 구하기 위해 임상의학(臨床醫學)이 추구되어 병변(病變)의 변화과정을 엄밀(嚴密)히 구명(究明)하고 이론(理論)이 오히려 간명(簡明)하고 객관성이 있으며 그 치법(治法)이 합리적(合理的)이오, 실제적(實際的)이며 일절(一切)의 공론(空論)을 배제(排除)한 것이 특징이라 할 것이다.

 

 

약 1700년 전 후한말(後漢末) 양자강(揚子江) 유역(流域)의 장사지방(長沙地方)의 태수(太守)의 직(職)에 있었던 이름이 장기(張機)요 호(號)가 중경(仲景)이었던 의성(醫聖)이 저술(著述)한 의서(醫書)가 바로 상한론(傷寒論)이다. 처음에는 십육권(十六卷)으로 저술된 이 의서(醫書)는 불과 70년이 못되어 전란(戰亂)으로 인해 산실(散失)되었었으나 동한(東漢)의 태의령(太醫令) 왕숙화(王淑和)가 잔존(殘存) 십권(十卷)을 수집한 후 선차(選次)하여 십오 권으로 편집하여 후세에 구전(口傳)으로 전해져 내려 오다가 천금익방(千金益方), 외대비요(外臺秘要), 의학금감(醫學金監) 등에 인용된 것을 송대(宋代) 영종(英宗)의 명(命)에 의하여 고보위(高保衛), 손기(孫奇), 임억(林億) 등이 상한론(傷寒論)을 교정간행(校訂刊行)한 것이 송대상한론(宋代傷寒論)이라 하여 현세(現世)에 전(傳)하는 바 된 것이다.

 

 

또한 북송(北宋)의 인종(仁宗) 때에 한림학사(翰林學士) 왕수(王洙)가 한림원(翰林院)의 금궤(金櫃)에 보관되어 있는 낡은 의서(醫書)3권을 발견하였으니 상한론(傷寒論)과 잡병(雜病)의 처방이 들어있어 혹산실(惑散失)된 것 중의 그 일부가 아닐까 하여 금궤옥함요략(金櫃玉函要略)이라 하였다. 이에 상한론(傷寒論)과 금궤(金櫃. 玉函) 요략(要略)은 본래 일서(一書)였으나 송대(宋代) 임억(林億)의 교정(校訂)으로 이서(二書)로 분(分)한 것을 명대(明代)의 조개미(趙開美)에 의하여 다시 일서(一書)로 합론(合論)하였으며, 이를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 또는 상한졸병론집(傷寒卒病論集)이라는 서(書)로 전해지게 되었고 후세에 다시 나뉘어 상한병(傷寒病)을 주로 다루는 서(書)를 상한론(傷寒論), 기타 내과잡병(內科雜病), 외과잡병(外科雜病)과 부인병(婦人病) 등의 잡병(雜病)을 정리한 서(書)를 금궤요략(金櫃要略)으로 명명하여 현세(現世)까지 전해져 이르게 되었다.

 

 

상한론(傷寒論)의 중경자서(仲景自敍)를 보면 ‘나의 친척이 평소에 많아서 이백 명 이상이었으나 건안(建安) 원년(元年)부터 십 년도 못 되어서 사망한 사람이 2/3에 달했다. 그 가운데 칠할(七割)은 상한병(傷寒病)에 이환(罹患)하여 죽었다’고 한 것을 보면 이 병(病)은 풍한(風寒)의 손상(損傷)을 받아 유행성(流行性)으로 일어나는 급성열병(急性熱病) 질환(疾患)이며, 사망률이 매우 높은 증상(證狀)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현대는 물론이오 미래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가장 공포스런 병증(病證)을 ‘바이러스 감염질환’임을 동서의학(東西醫學)이 함께 경고하고 있는 이 때 상한론(傷寒論)의 각종 주 증상(證狀)들이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급성열병 증후(證候)와 거의 동일하므로 각종 괴질성 ‘바이러스 감염’질환이 만연하고 있는 이 때 상한론(傷寒論) 치법(治法) 연구 및 탐구는 매우 큰 의의(意義)가 있다 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상한론(傷寒論) 각론의 치병례(治病例)를 보면 열성질환(熱性疾患), 호흡기질환(呼吸器疾患), 소화기질환(消化器疾患), 부인과질환(婦人科疾患), 신경계질환(神經系疾患), 순환기질환(循環器疾患), 비뇨계질환(泌尿系疾患), 외과질환(外科疾患), 인후과질환(咽喉科疾患), 안과질환(眼科疾患), 기타 일사병(日射病), 고혈압(高血壓), 관절(關節)의 이상(異常) 등 수없이 많은 다양한 질병의 증상(證狀)들과 치병례(治病例)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상의 제질환(諸疾患)을 보면 잠복기(潛伏期)로부터 발병(發病), 진행(進行), 극기(極期), 유기(癒期), 또는 사망(死亡)의 기전(機轉)을 취(取)하는 열성질환(熱性疾患)도 있고, 그러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는 질환(疾患)도 있고, 또 발병(發病)하여 유기(癒期)에 이르기까지 한 증후(症候)로서 끝을 맺는 질환(疾患)도 있다.

 

 

그러나 여하한 질환(疾患)을 막론하고 잠복기(潛伏期)로부터 유기(癒期)에 이르기까지에는 반드시 자각(自覺) 또는 타각적(他覺的)으로 어떠한 증상(證狀)을 수반(隨伴)하게 된다. 이것을 동의학(東醫學)에서는 한열(寒熱), 허실(虛實), 표리(表裏), 음양(陰陽)으로 대별(大別)한다. 인체(人體)가 상도(常度)를 벗어나 한열(寒熱), 허실(虛實), 표리(表裏), 음양(陰陽)의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게 되면 질병(疾病)을 야기(惹起)하게 되니 이 변화과정(變化過程)을 상한론(傷寒論)에서는 병명(病名)으로 논(論)하지 않고 태양(太陽), 양명(陽明), 소양(少陽), 태음(太陰), 소음(少陰), 궐음(厥陰)의 육개증후군(六個證候群)으로 나누어 각군(各群)마다의 치법(治法)과 오치시(誤治時)의 처치방법(處置方法)을 논(論)한 것이다. 그러므로 상한론(傷寒論)은 급성(急性) 열성병(熱性病)만을 다스리는 학문(學門)이 아니라 이 병(病)이 어떠한 증후군(症候群)에 속(屬)해 있는가를 관찰(觀察)하여 인체(人體)가 병세(病勢)에 저항(抵抗)하고 있는 그 힘을 따라서 질병(疾病)을 구축(驅逐)하는 방법을 연구(硏究)하는 학문(學門)이다. 이러한 상한론(傷寒論)의 치병(治病) 이론(理論)은 질서정연(秩序整然)하고 정엄(正嚴)하며, 치료(治療)하는데도 조리(調理)있게 준제(俊劑)와 평제(平劑), 사제(瀉劑) 등으로 화공(和攻)하는 방법이 갖추어져 있고. 이론체계(理論體系)가 모든 병(病)의 발전변화(發展變化)에 연관성(連關性)이 있으므로 모든 병(病)을 치료(治療)하는데 기본(基本)이 되고 골간(骨幹)이 되므로 먼저 고방(古方), 즉 상한론(傷寒論)을 습득(習得)하여 치병(治病)하는 원리(原理)를 습득(習得)한 다음에 후세방(後世方)을 연구(硏究)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참고1 ▶

 

 

상한론(傷寒論)에서는 병(病)의 상태(狀態)를 크게 음(陰), 양병(陽病)으로 구분(區分)하고 음(陰), 양병(陽病)은 각각 삼음삼양(三陰三陽)으로 나누어 육경병론(六經病論)을 폈으며, 열병풍습(熱病風濕)의 사기(邪氣)가 체(體)에 발생(發生)하여 변화과정(變化過程)을 나타낸 것이니 쉽게 말하자면 병명(病名)이 곧 육종(六種)이라는 것이다. 그 육종(六種)의 병명(病名)은 곧 태양병(太陽病), 소양병(少陽病), 양명병(陽明病)이오, 태음병(太陰病), 소음병(少陰病), 궐음병(厥陰病)이라는 것이다. 이 육종병(六種病)의 병리(病理)를, 즉 증후(證候)를 밝히고 그 증후(證候)에 치료방문(治療方文. 處方)까지 제시(提示)한 것으로 가히 묘(妙)한 의방(醫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환자(宦者)의 육종병증후(六種病證候)만 판별(判別)되면 치방(治方)이 제시(提示)되어 있으니, 증(證)이 곧 치(治)로 이어지는 것이 병명(病名)을 보고 치법(治法)을 찾는 여타의 단편적인 방(方)과 크게 차별화되는 매우 입체적인 치법(治法)을 다루는 것이 곧 중경(仲景)의 상한론(傷寒論) 입론(立論)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2 ▶

 

 

왕숙화(王叔和)는 이름이 희(熙)이며 중국 산서성 고평현이 고향으로 동한(東漢) 건안(建安) 15년(210년)부터 진(晉) 태강(太康) 원년(元年. 280년) 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당시의 국가최고의 어의(御醫)라 할 수 있는 태의령(太醫令)을 지냈는데 이로써 그가 당시에 지녔던 명망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역사상 위(魏), 진(晉)시대는 사회현실로 인해 도가(道家)사상이 널리 퍼지고 도교가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학술 분야에서도 신비적인 색채가 감돌고 있었으니 의학도 이에 예외일 수는 없어 복식(服食) 등을 통해 신선(神仙)이 되고자 하는 등의 비현실적인 방법들이 진정한 의학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왕숙화(王叔和)는 홀로 정진하여 의학의 정통을 찾아 주류 의학을 깊이 연구하였는데 특히 맥학(脈學)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왕숙화(王叔和)는 이전의 경험을 종합하고 자신이 직접 체득한 바를 결합하여 맥(脈)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그의 이런 노력은 맥경(脈經)이라는 뛰어난 저작을 낳게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전란(戰亂)으로 산실(散失)된 중경(仲景)의 위대한 의서(醫書)인 상한론(傷寒論)을 수집하여 그 명맥을 잇게 하므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한 노력은 동의학(東醫學) 역사(歷史)에서 크게 빛나고 있다 할 것이다.

 

출처 : 박 순석의 왕인 약초 농장
글쓴이 : MP순돌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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