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잘 살피면 어떤 암이든지
고칠 수 있는 법이오"
"병을 고치는 것도 전쟁이나 마찬가지예요. 병을 못 고치면 사람이 죽는 겁니다. 나는 이 병을 못 고치면 내가 죽는다는 각오로 치료에 임합니다. 그렇게 해야 실수가 없어요. 나한테 오는 사람은 전부 말기 암환자들이예요. 염라대왕 문턱까지 와 있는 사람들입니다. 음식이 안 넘어가고 대변도 안 나오며 몸무게가 20킬로그램이나 30킬로그램이 줄어든 사람이 많아요. 얼마 전에 환자가 한 사람 왔는데 몸무게가 35킬로그램밖에 안 돼요. 병원에서 장암으로 진단을 받았다고 하는데 내가 배를 만져보니 뱃속에 딱딱한 돌멩이 같은 것이 수십 개 꽉 차 있어요. 약을 줘서 덩어리 삭이고 대변 나가게 해 줬더니 이제 살 것 같다고 하더군요. 결국 이 사람이 낫기는 나았어요."
구석구석 약초 내음에 절어 있는 제기동의 허름한 뒷골목. 어느 녹슨 철대문 안 허물어져 가는 한옥에 방 한 칸을 얻어서 지내는 심선택(沈璇澤 : 64세) 옹은 40년 동안 의술을 연구하여 암, 정신병, 간질 등 현대의학이 포기한 난치병자 수백 명을 치유한 기인(奇人)이다. 그 치료법은 기이하고 효과는 빠르고 정확하며, 숨이 넘어 가는 사람을 살려 내고도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의사면허가 없어 돌팔이임을 자처하고 있으나 그야말로 진짜 명의 중의 명의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는 복진법(腹診法) 곧, 배를 자세히 관찰하여 병을 진단하고 <상한론(傷寒論)>의 처방으로 환자를 치료한다. 40년 동안 수백 명의 암환자를 완치하였으며, 암뿐만 아니라 간경화증, 간질, 정신병, 신경통, 관절염 등 어떤 병이든지 못 고치는 병이 거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는 가장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방법, 곧 고방(古方)으로 가장 고치기 어렵다는 암을 전문으로 치료한다. 그의 진단법과 치료법은 요즘 한의사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방법과 전혀 다른 것 같으면서도 가장 깊이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가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진단법은 복진법, 곧 배를 자세히 살피는 것이오, 치료법은 고방, 곧 <상한론>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배를 잘 살펴 정확하게 처방을 하면 세상에 못 고치는 병이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40년 동안 암환자 수백 명을 고쳐
"40년 동안 암환자를 치료하면서 죽을 사람을 살리기도 많이 했으나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내가 잘못하여 죽게 한 일도 많았습니다. 나도 처음에는 암이라는 병의 정체를 잘 몰랐어요. 그 때는 내가 살린 사람보다 죽인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치료하던 환자가 죽으면 진흙탕에 꿇어앉아 밤을 새우며 통곡을 했습니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내 잘못으로 죽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이제야 암의 정체를 좀 안 것 같습니다. 거의 실수를 하지 않고 환자를 치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상한론>은 지금부터 1천 7백년 전 중국 후한(後漢)의 장중경(張仲景)이라는 사람이 쓴 동양의학의 고전으로 상한(傷寒)이라고 하는 급성 열병의 증상과 치료법을 경과에 따라 기술한 책이다. <상한론> 말고 <금궤요략(金?要略)>도 장중경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것은 주로 만성질병의 증세와 치료법을 적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상한론>과 <금궤요략> 등에 기재되어 있는 처방을 고대의 의학사상으로 회귀한다는 뜻에서 고방(古方)이라고 하고, 그 뒤 금(金), 원(元), 명(明), 청(淸)나라 때와 현대에 만든 처방을 후세방(後世方)이라고 한다. 요즈음 우리나라, 중국, 일본을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동양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후세방을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심선택 옹은 철저하게 고방을 고집하고 반드시 고방을 써야만 근본적으로 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후세방에는 복진법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정확하게 진단을 해서 약을 쓸 수가 없고 본래 고방에 있던 처방에다 약재를 하나 둘씩 계속 보태다 보니 처방만 복잡해진 겁니다. 한 처방에 약재를 대개 30-50가지씩 넣어요. 나는 한두 가지, 많아야 7-8가지밖에 안 넣어도 병이 잘 나아요. 잘 낫는데 처방을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주변에서 약 짓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후세방을 공부하는 사람들이고 고방을 연구하는 사람은 나 혼자밖에 없어요. 그러니 고방을 하는 사람은 참 외롭습니다.
고방과 후세방을 총에 비교하면 고방은 외알탄과 같고 후세방은 산탄총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고방을 목표물을 정확하게 조준해서 상대방을 한 방에 나가떨어지게 하는 것과 같고 후세방은 산탄을 수없이 퍼붓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탄총으로는 그 파편에 맞는 것도 있고 안 맞는 것도 있으며 빗맞는 것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결국 산탄총 파편에는 정확하게 맞아도 잘 나가떨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곰을 잡으려면 총알이 굵은 총으로 한 방에 쓰러뜨려야지 꿩 잡는 총으로 잡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고방은 한 방에 상대방을 나가떨어지게 하는 위력이 있지만 그만큼 까다롭고 위험이 따릅니다. 잘 쓰면 어려운 병을 약 한두 첩에 뿌리뽑을 수 있지만 잘못 쓰면 오히려 목숨을 잃게 할 수도 있습니다. 대신 후세방은 위험은 적지만 병의 뿌리를 완전히 뽑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후세방을 쓰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처음에는 병이 잘 낫다가 웬만큼 지나면서부터는 효과가 없다고 해요. 이것이 후세방의 한계입니다. 처음에 잘 낫다가 갑자기 콱 막히면 방법이 없는 거예요. 고방은 참 어렵습니다. 병의 경중과 허실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고방을 쓸 수 있습니다."
상한론은 한의과대학에서 반드시 배우는 책이지만 그 내용이 너무 어려워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고 배우기도 어려우며 실제 임상에서도 그다지 쓰지 않는다. 중국이나,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에서도 <상한론>은 거의 버려진 의학이다. 심선택 옹은 이 버려진 의학에 통달하여 어떤 병이든지 마음대로 고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자기 병을 고치기 위해 의술 공부
심선택 옹은 청송 심씨로 경북 청송 사람이다. 여섯 살 때 고향을 떠나 강원도 평창군의 깊은 산골에서 자랐다. 어려서 서당에 다니며 한문을 배웠으며 학교라곤 초등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다. 시골에서 농사 짓고 땔나무 구하러 산에 다니면서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의술공부에 몰두하게 된 것은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서른 두 살 때 그는 와사풍 곧, 안면신경마비증에 걸렸다. 어느 날 갑자기 얼굴 근육이 마비되어 한 쪽 눈을 감을 수 없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으며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다. 몇 군데 병원에 가서 약을 지어 먹고 치료를 받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의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자기 병을 스스로 고쳐 보기로 작정했다.
"내 병을 고쳐 보겠다고 의학을 공부했어요.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니 책을 보고 혼자 공부했지요. <방약합편(方藥合編)>, <동의보감(東醫寶鑑)> 같은 책을 보니 꽤 재미가 있어요. 가끔 환자 치료를 해 보니 잘 낫고. 그런데 내가 의학을 좀 안다고 소문이 나자 암, 중풍, 폐결핵 같은 이런 난치병자들만 몰려왔어요. 그래서 <동의보감>이나 <방약합편>에 나와 있는 대로 약을 써 보니 잘 낫지를 않아요. 그래서 의술의 근본이 뭐냐, 근본을 찾으려면 <방약합편> 같은 후세방(後世方) 보다는 고방(古方)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고방이란 어떤 것이냐, 이건 수천 년 전에 성인들이 만든 처방이라. 후세방은 무언가 결함이 있지만 고방은 완전해요. 그래서 고방을 찾다가 상한론(傷寒論)을 공부한 거라. 스승이 없으니 순전히 경험으로만 공부를 했지요. 나뭇짐 지고 오면서도 책을 읽고, 버스 타고 가는 중에도 책을 읽고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공부했지요.
병을 치료하는 것, 특히 암환자를 고치는 것은 전쟁과 같습니다. 전쟁에서 적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 겁니다. 환자 치료도 마찬가지예요. 병을 고치지 못하면 내가 죽겠다는 자세로 의술을 다루어야 하는 겁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호랑이 굴에 들어가겠다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의사가 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