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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심선택선생님의 암치료 사례

킴칸 2010. 8. 21. 10:09

(1) 수술을 포기한 위암을 고치다
 환자는 67세 남자로 원주 기독병원에서 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암이 아랫배 전체에 퍼져서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집에 와 있는 상태였다. 광대뼈가 험상궂게 튀어나오고  눈 언덕이 쑥 들어가 있으며 창백한 얼굴에 간신히 화장실 출입을 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누워 있는 것을 처음 보았는데 아랫배에서 물소리가 꼬르르 꼬르르 들린다.
 복진을 해 보니 손을 약간만 대도 꼴꼴 꿀꿀 소리가 난다. 심하(心下)에 저항은 경미한 편이다. 뱃가죽이 얇고 당겨져 있다. 뱃가죽이 등에 붙었다고 할 정도로 말랐다. 얼굴은 푸르고 손발은 차갑고 배도 차갑다. 6월 하순인데도 환자는 춥다고 한다. 구토를 그다지 심하게 하는 편은 아니지만 우유도 먹으면 다 토하므로 마실 수 없고 다른 어떤 음식도 먹지 못했다. 음식을 못 먹으니 대변을 20일에 한 번씩 본다.
 육군자탕(六君子蕩)에 소건중탕(小建中蕩)을 합방하고 춥다고 하니까 附子를 더하고 또 몸이 쇠약하므로 인삼을 배로 해서 하루 한 첩씩 복용하게 하고 효소식품을 겸하여 복용하게 했다.
 10일 뒤에 갔더니 흰죽을 한 그릇 맛있게 먹고 있다. 배도 손도 따뜻해지고 구토도 완전히 멈추었다. 다시 10일동안 약을 복용하고 병이 완전히 나았다. 그러나 한 달 뒤에 친구 환갑잔치에 갔다가 술과 음식을 너무 많이 먹고 체해서 사망했다. 위암을 고쳐 놓았더니 음식을 폭식해서 죽은 경우가 너무 많다.
 
 (2) 암이 온 몸에 퍼진 것을 고친 사연
 환자는 32살의 젊은 부인으로 윗배와 아랫배가 교대로 아파 경희의료원에 가서 상복부를 수술로 열어봤더니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다시 하복부를 열어 봤으나 역시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병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경희의료원의 소견서를 가지고 원자력병원으로 갔다. 이 때 환자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것으로 느꼈다고 한다.
 원자력병원에서는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라고 하였다. 그 때 내가 전에 위암을 고쳐 준 환자의 딸이 환자를 집으로 모셔다 놓고 나를 초대했다. 환자는 가만히 누워서만 지내고 역시 윗배와 아랫배가 번갈아 아프다고 한다. 윗배는 체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구토는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음식을 먹으면 설사가 나고 대변을 보고 난 뒤에도 뒤가 무직하여 변이 덜 나온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맥을 짚어 보니 활약(滑弱)이다.
 배에서 물소리가 나고 체한 느낌이 들며 배가 물렁물렁한 것은 육군자탕증이요, 윗배와 아랫배가 교대로 아픈 것은 시복통에 해당하고 설사를 하고 뒤를 보고 나서도 뒤가 무직한 것은 소건중탕증이다.
 육군자탕에 소건중탕을 합하여 처방했다. 4첩을 복용하고 모든 증상이 다 없어졌다. 다시 6첩을 주어 복용하게 했다. 이를 복용하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재발하지 않았다.
 
 (3) 장례준비 중인 환자를 살려내다
 1997년 봄에 33살 된 부인이 제천 중앙병원에서 내시경 검사결과 위 전체가 까뭇까뭇하게 깨를 뿌린 것처럼 암이 퍼져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환자는 건강해 보이고 활동도 잘 할뿐더러 자기 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고 한다.
 환자는 살결이 희고 작은 키에 약간 땅땅한 형이다. 배가 몹시 아프고 설사가 나며 배에 가스가 차며 대변을 보고 난 뒤에도 뒤가 무직하여 변이 아직 남아 있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배는 차갑다. 맥은 침약(沈弱)이다.
 소건중탕을 써야겠으나 환자가 건강하니까 계지작약탕(桂枝芍藥蕩)이 적합할 것으로 판단했다. 계지작약탕은 소건중탕에서 흑설탕을 뺀 처방이다. 내가 계지작약탕을 써야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부인이 남편과 성행위만 하면 몸이 극도로 피곤해서 꼼짝 못하고 하루종일 방에만 누워 있다는 말을 했다. 나는 성행위를 하고 나서 몸이 피곤해지는 증상과 성신경쇠약증을 몸이 몹시 쇠약해서 그런 것으로 보고 처방을 바꾸어 소건중탕 4첩을 주었다.
 그런데 그 약이 매우 효과가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6첩을 주었다. 약을 먹는 동안 경과가 좋았는데 다 먹고 나서 환자는 갑자기 숨이 끊어졌다. 셋방에 단둘이 사는 형편이라 죽은 아내를 방에다 혼자 두고 남편은 밖에 나가서 장례준비를 해 놓고 새벽에 돌아와 보니 죽었던 아내가 눈을 멀뚱히 뜨고 일어나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남편은 깜짝 놀랐다. 배가 아프지 않으냐고 물으니 속이 시원해지고 전혀 아프지 않다고 한다.
 그 날 즉시 제천 중앙병원에 가서 내시경 검사를 받아 보니 위 전체에 까뭇까뭇하게 퍼져 있던 암세포들이 깨끗하게 사라졌다고 했다. 이 부부한테 일비일희(一悲一喜)가 하루사이에 일어났다. 남편은 부인한테 한복을 곱게 해 입히고 즐겁게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때는 봄이었고 이 여행은 신부의 부활을 축하하는 여행이었으리라.
 
 (4) 급성 위암을 고친 이야기
 환자는 42살 된 남자로 말기 위암이다. 음식을 먹으려니 배가 불러 먹을 수 없고 하루 종일 굶어도 배가 전혀 고프지 않다고 한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굶어죽은 귀신인 아귀가 배에 붙어서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고 굶어도 배가 고프지 않고 또 배가 고파 먹으려고 하면 금방 배가 불러 음식을 먹을 수가 없는데 이와 같은 아귀(餓鬼)의 장난에는 인삼탕을 복용하면 치료할 수 있다고 하였다.
 환자는 인천 길병원에서 말기 위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미 늦었으므로 수술도 할 수 없고 약도 주지 않더라고 한다. 환자는 몹시 낙담하고 있었다. 보통 체질이고 먹지를 못하니 몸이 피곤할 뿐이다. 더운 음식을 좋아하며 손발이 차갑지는 않다. 만약 손발이 차면 부자를 넣어 주어야 한다. 인삼탕(인삼, 감초, 백출, 건강 각 8그램) 10첩을 주었다. 이것을 다 복용하고 나서 환자는 건강한 모습으로 와서 '이제 다 나았습니다' 라고 했다. 재발을 막기 위해서 인삼탕 4첩을 더 주었다. 이 환자의 경우에는 효과가 왜 이토록 빠른가. 그것은 환자의 병이 급성병이기 때문이다.
  
 (5) 우유도 못 넘기는 위암을 완치
 1989년 9월 4일 59살 된 부인이 찾아왔다. 위암 말기로 필자의 딸 친구의 어머니라고 했다. 이 부인은 젊어서 남편이 하도 속을 썩여서 계속 밥을 굶었다고 했다. 위암으로 진단을 받은 지 1년이 넘었으나 죽지 않고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상태였다. 음식은 일체 먹을 수 없고 우유도 토해 버리고 넘어가지 않는다. 먹는 것이 없으니까 변은 한 달이 넘어도 나오지 않는다. 간신히 영양제 주사나 보혈제 주사로 목숨을 연명하고 있다고 했다.
 복진을 해 보니 제일 아픈 곳이 명치 밑이고 그 부위에 아기 주먹만하고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덩어리가 만져졌다. 그 부분에 손을 대기만 해도 몹시 아프다고 했다. 환자는 '제발 이 덩어리만 없어도 살 것 같다'고 한다.
 맥은 1분에 100번을 뛰고 침세활삭이었다. 몸무게는 작년에 59킬로그램이었으나 지금은 39킬로그램으로 17킬로그램이 줄었다고 했다. 실로 가죽과 뼈만 남은 상태이다. 뱃가죽을 왼쪽으로 밀면 왼쪽으로 쌓이고 오른쪽으로 밀면 오른쪽으로 쌓인다. 배꼽 왼쪽에 있는 오이처럼 생긴 덩어리만 힘있게 꿈틀거린다. 배를 손으로 눌렀다가 손을 떼면 손가락 다섯 개 자국이 그대로 배에 찍혀 오랫동안 없어지지 않는다. 육군자탕, 억간산(抑肝散)에 진피(陳皮)와 반하(半夏)를 더한 것, 그리고 윤장탕(潤腸蕩)을 합하여 처방했다. 세 가지 처방을 합친 것이다. 먼저 4첩을 주면서 하루 한 첩씩 복용하게 했다.
 9월 7일, 하루 복용하고 나자 대변이 두 번이나 많이 나오고 구토가 덜해졌으며 음식을 조금씩 먹을 수 있게 되었다.
 9월 8일, 대변을 많이 보고 죽을 반 그릇 먹었다. 손가락 굵기의 7-8센티미터쯤 되는 검은 핏덩어리를 세 개나 토했다.
 9월 9일, 대변이 묽어서 설사처럼 나왔다. 시커먼 피를 많이 토했다.
 9월 10일, 약 3첩을 5일분으로 나누어서 주었다.
 9월 11일, 가슴 밑에 있던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덩어리가 사라졌다. 아랫배에 있던 변덩어리도 없어졌다.
 9월 26일, 환자는 음식을 잘 먹고 대변도 잘 본다. 배에도 탄력이 생기고 여러 모로 건강한 사람처럼 되었다.
 9월 30일 환자는 산에 도토리를 주우러 갔다.
 그 뒤로 환자는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다.
 
 (6) 급성 위암에 걸린 한의사를 고친 사연
 환자는 72살 된 한의사로 병명은 급성 위암이다. 1989년 12월 24일 내기 바둑으로 밤을 새우던 중에 구토가 심하게 나서 영등포성모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 급성 위암으로 판정을 하고 이틀 뒤에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환자는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한의사로 체격이 건장하고 성격이 날카로웠다.
 환자가 말하기를 '다른 사람의 구토는 육군자탕에 용안육(龍眼肉), 백두구(白荳?)를 가해서 쓰면 전부 그쳤는데 나한테는 이 약이 효과가 없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토하니 비화음(比和飮)을 먹어야 될 것' 이라고 했다.
 구토가 몹시 심하여 쫘악, 쫙 하고 노란 물을 토하는데 토액에는 음식물이 약간 섞여 있다. 혀에는 백태가 두껍게 끼어 마치 빈대떡을 붙여 놓은 것 같고 혓바닥은 기름을 바른 듯 미끄럽다. 혀를 봐서 소시호탕을 써야겠다고 결정했다. 흉협고만(胸脇苦滿)이 강하게 나타나고 맥은 1분에 72번을 뛰고 힘이 있으며 변비 때문에 대변이 나오지 않는다.
 혀에 있는 백태만 아니라면 대시호탕을 써야 한다. 그러나 백태가 있을 때는 소시호탕을 쓰는 것이 절대적이다. 소시호탕에 구토가 심하므로 생강과 반하를 12그램으로 늘리고 대자석 4그램을 넣어서 4첩을 주었다.
 그 날 저녁 8시 무렵에 한 번 복용하고 그 맹렬하던 구토가 딱 그쳤다. 환자의 장남이 '선생님, 이것은 기적입니다.' 한다. 아들 5형제와 며느리들이 다 와서 모두 기뻐했다.
 환자가 '그 약 참 맛이 좋아요. 이 약에 용안육을 넣었지요?' 라고 묻는다. '예, 넣었습니다.' 라고 대답했더니 '백두구도 넣었지요?' 라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러면 그 약은 비화음이 아닌가?' 라고 하기에 나는 '예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소시호탕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말해 봤자 곧이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환자는 그때까지 속이 울렁거리는 증상이 있어서 약 두 첩을 더 복용하게 했다. 다음 날인 일요일날 보았더니 오심도 사라지고 혀에 백태도 없어졌으며 대변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그 다음 날 병원에서 담당의사가 수술을 하기 전에 검사를 다시 했더니 분명히 사흘 전에 있던 암덩어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했다. 다시 한 번 검사를 했으나 암덩어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의사는 이번에는 폐가 부었으니 폐를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환자가 멀쩡하고 다른 아무 이상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그 다음 날 퇴원을 했다. 이 분은 그 뒤로 5년을 더 살다가 돌아갔다.    
 
 (7) 임종직전의 위암과 자궁암을 고친 이야기
 1988년 초여름에 어느 내과의사의 부인이 찾아왔다. 나이는 31살이고 자궁암에서 위암으로 전이하여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이 부인은 자궁외임신으로 인공유산을 했다. 의사인 남편이 검사를 해서 자궁암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남편은 수술로 자궁을 들어내지는 않고 일주일에 4일 동안은 방사선 치료를 하고 3일은 쉬는 식으로 4주일 동안 치료를 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심하게 구토가 나서 물이나 음식을 전혀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온갖 방법을 다 써 봐도 구토는 조금도 멎지를 않았다. 그래서 검사를 해 보았더니 위에 큰 암덩어리가 있어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2개월 동안을 계속해서 토하기만 하고 나니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서 혼자서는 일어날 수도 걸을 수도 없다. 말도 겨우 하고 화장실도 부축해 줘야 갈 수가 있다.
 맥을 보니 양쪽 합곡혈까지 뛴다. 1분에 120번 뛰는데 이런 것은 죽은 맥이라고 했다. 전에 어느 환자가 임종하기 전에 맥을 보니 합곡혈에 맥이 강하게 뛰고 십선혈(十先穴 : 열 손가락의 끝)에 맥이 다 뛰는 것을 보았다.
 나는 치료를 거절했다. 보호자인 남편도 없는데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환자를 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환자와 함께 온 환자의 오라버니는 울면서 꼭 약을 달라고 애원을 했다. 나는 입장이 난처했다. 아마 이 환자는 3-4일은 더 살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난날을 한 번 돌이켜 보았다. 이 환자보다 더 위험한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었다. 결국 약을 주기로 했다.
 환자는 흉협고만이 심하게 나타나고 변비도 심하다. 맥은 가늘고 손발이 차다. 몸도 몹시 쇠약했다. 그래서 소시호탕에 녹용을 보통 사람의 3배를 넣고 인삼도 보통사람의 3배인 12그램으로 하고 구토를 멈추게 할 목적으로 생강, 반하도 12그램으로 하고 대자석 4그램을 가하여 4첩을 주었다. 약을 주고 나서 집에 와도 잠이 오지 않는다. 행여나 이 환자가 밤 사이에 죽지 않았는가 걱정을 하다가 아침에 전화를 했다. 환자는 구토가 멈추고 식사를 약간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대답을 했다. 나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그 뒤로 환자는 몸이 좋아졌다. 남편인 내과의사는 처남한테 '그 한약 참 신기한 약이군' 하고 한마디를 하더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나한테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8) 말기 간암을 완치
 1989년 5월 24일, 환자는 52살 된 여자로 원자력병원에서 간암 말기로 진단을 받았다. 키는 158센티미터에 몸무게 42킬로그램으로 병을 발견한 뒤로 몸무게가 10킬로그램이나 줄었다고 했다. 환자는 눈을 감고 머리와 팔이 축 늘어진 채로 의자에 기대어 있고 말소리도 작고 가늘어서 귀를 가까이 대어야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 오른쪽 엄지손톱이 파랗고 말라 있으며 맥은 1분에 88번을 뛰며 침소약(沈小弱)이다.
 맵고 짜고 단 음식을 좋아하고 시고 쓴 음식을 싫어한다. 복진을 해 보니 제변동계(臍邊動悸)가 나타난다. 제변동계란 배꼽주위가 펄떡펄떡 뛰는 것을 말한다. 이런 환자는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이 적당하다. 그런데 양쪽 갈비뼈 밑을 눌렀을 때 심한 통증이 오는 흉협고만이 있을 때에는 소시호탕을 써야 한다. 이 부인은 두 가지 증상이 다 있으니 보중익기탕에 소시호탕 반량을 합하여 쓰는 것이 마땅하다.
 부인은 말하기도 힘든 상태이고 남편이 말하기를 지난 겨울부터 몸이 좋지 않았고 한 달쯤 전부터 옆구리가 욱신욱신 달아오르고 뜨끔뜨끔하면서 아프며 음식을 먹기만 하면 토했다고 한다. 원자력병원에서 혈액검사와 컴퓨터단층촬영검사를 받았는데 모두 간암으로 나타났다. 남편은 부인이 간암이라는 얘기를 듣고 까무라쳤다. 그래서 혹 오진이 아닌가 하는 기대로 서울대병원으로 가서 혈액검사와 컴퓨터단층촬영검사를 받았는데 거기서도 역시 위암으로 나타났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원자력병원으로 와서 수술을 받으려고 할 때에 어느 나이 든 의사 한 분이 은밀히 말하기를 수술을 하는 것은 의사들의 배만 부르게 할뿐이니 집으로 돌아가서 깨끗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오 라고 말했다고 한다.
 남편은 그 의사의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냥 아내가 죽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 때까지 환자는 자기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며 추웠다가 더웠다가를 반복하는 왕래한열(往來寒熱) 증상이 심했다. 열이 오르면서 이마에 땀이 나고 등이 뜨겁게 달아오르다가 그 다음에 오한이 와서 덜덜 떨다가 속이 울렁거리고 음식을 먹기만 하면 토하곤 했다. 식욕이 없고 억지로 먹으면 속에 있는 것이 다 넘어오려고 한다. 입맛이 쓰고 신경이 날카로우며 양쪽 옆구리와 가슴부분이 욱신욱신 쑤시고 뜨끔뜨끔 아프다고 하였다.
 나는 보중익기탕에 소시호탕 반량을 합하고 계지(桂枝), 백작약(白灼藥), 목향(木香), 곽향(藿香) 각 4그램, 흑설탕 20그램을 더하여 처방했다. 10첩을 복용하고 나서 환자는 통증이 오후에만 나타나고 식욕이 생겼다. 다시 10첩을 주었다. 복진을 해 보니 양쪽 갈비뼈 안쪽의 흉협고만이 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 뒤로 환자는 모든 통증이 사라졌고 다시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다.
 
 (9) 담도암이 한 달만에 나아
 1986년 9월 내 손윗동서가 간암에 걸려 찾아왔다. 환자는 57살로 평소에는 고뿔도 한번 안 걸리는 건강한 체질이며 대주가(大酒家)로 소주 한 병을 큰 그릇에 부어서 단숨에 들이키곤 한다. 그러다가 86년 4월에 폭음을 하고 나서 술병이 들어 자녀들이 원주기독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진단을 받았다. 검사결과는 담도암이며 간에도 전이가 되었을 것으로 의심이 간다고 했다. 의사의 권고대로 수술을 했는데 갈비뼈를 하나 잘라내고 배를 넓게 째서 담낭을 떼어내어 버렸다. 수술 뒤 경과는 좋다고 하지만 환자는 몹시 춥고 몸이 피곤하여 견딜 수 없었다. 춥다고 하는 것과 피곤해 하는 것이 모든 만성 암환자의 공통된 특징이다.
 복진을 해 보니 환자의 뱃살은 두껍지만 맥은 부지약으로 1분에 60번이 못 된다. 좌우 갈비뼈 안으로 흉협고만이 심하여 손도 들어가지 않았다. 명치 밑에도 딱딱한 덩어리가 만져졌다. 변비는 없고 대변을 묽게 본다. 나는 흉협고만과 맥이 부약한 것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고 시호계지탕을 쓰기로 했다. 시호계지탕에 오한과 설사 증세가 있으므로 사역탕(四逆蕩)을 합하여 처방했다. 사역탕이란 처방은 건강(乾薑), 감초(甘草), 부자(附子) 각 6-8그램으로 되어 있고 오한이 있거나 손발이 차고 먹은 음식이 잘 삭지 않고 남아서 설사를 하는데 쓴다.
 환자는 내가 준 약을 복용하고 오한과 피로가 사라졌으며 약을 먹고 나서 마을로 나가면 몸이 훈훈해지고 기분이 좋아서 마을 사람들이 술에 취한 것 같다고 하더라고 했다. 식욕이 나고 얼굴에 화색이 돌며 설사도 없어졌다. 30일 동안 약을 복용하고 양쪽 갈비뼈 밑에 있던 흉협고만이 없어졌다. 명치 밑에 딱딱한 덩어리만 약간 남아 있었는데 그것도 역시 칼을 대지 않고 약을 써서 깨끗하게 없애버렸다.
 병원에서는 그 때 같이 암으로 왔던 사람은 다 죽었는데 이렇게 건강해진 것은 우리 병원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기록으로 남길 것이라고 하였으며 환자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우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10) 죽마고우의 간암을 고치다
 1987년 4월 어느 날 나의 죽마고우가 간암으로 찾아왔다. 나는 20년 전에도 간경화증으로 다 죽게 된 것을 고쳐 준 일이 있다. 그는 술을 좋아하여 병이 생겼다. 술을 마시면 피를 토하고 피를 토하고 나면 다시 술을 마시기를 반복했다. 이왕 죽을 바에야 실컷 마시다가 죽겠다는 것이다. 20년 전에는 <방약합편>에 있는 처방인 대금음자(對金飮子)에 오리나무 껍질을 더하여 써서 나았다.
 그는 몇 년 동안 술을 끊는가 했더니 다시 부지런히 마셨다. 그러다가 몸에 이상이 있어 병원에 가니 간암이라는 진단이 나온 것이다. 간암에 걸렸으면서도 활동하는 데에 지장이 없었는지 강원도 평창에서 부인과 자녀들을 데리고 나한테 왔다.
 환자는 갈비뼈 밑에 흉협고만이 강하게 나타나고 추웠다 더웠다 하며 속이 울렁거리고 구토가 난다고 했다. 음식은 거의 먹지 못하고 맥은 부약(浮弱)이니 시호계지탕을 쓰는 것이 적당할 것으로 판단했다. 시호계지탕을 한달 동안 복용하게 했다. 그 뒤로 상태가 매우 좋아져서 스스로 약을 구하여 복용하고 7월 하순 몹시 무더울 때 겨울철에 입는 내의를 입고 찾아왔다. 몹시 춥고 찬물이 피부에 닿으면 그 주변까지 가려워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시호계지탕에 건강과 부자를 각각 8그램씩 더하여 복용하게 했다. 환자는 그것을 복용하고 추운 것과 찬물에 닿으면 몸이 가려운 증상이 없어졌다.
 그 뒤로 한 달이 지난 뒤에 부인과 아들딸을 다 데리고 와서 고맙다고 치하를 했다. 복진을 해 보니 흉협고만이 완전히 사라지고 오른쪽 갈비뼈 밑에 가벼운 저항만이 느껴졌다. 시호계지탕을 3개월 동안 써도 여전하던 흉협고만이 건강과 부자를 더하여 쓰니 이렇게 빠른 속도로 사라진 것이다.

출처 : 박 순석의 왕인 약초 농장
글쓴이 : MP순돌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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