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는 닭의 나라
닭은 이처럼 우리 선조들에게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것은 신통력 있는 짐승이라는 관념에서 나온 얘기일 터이다. 실제로 우리 선조들은 닭을 매우 사랑하여 거의 집집마다 닭을 길렀고 달걀이나 닭고기를 상당히 귀하게 여겼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이 수 천년을 길러 왔던, 조선닭이라고도 부르는 토종닭은 지금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예부터 우리 나라는 좋은 닭이 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무엇이거나 우리 나라의 것은 깎아 내리고 멸시했던 중국사람들도 조선닭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의 옛 역사책인 <삼국지>위지 동이전을 보면 한(韓)나라에 꼬리가 긴 아름다운 닭이 있다고 하였고 <후한서>에도 마한의 꼬리 긴 닭은 꼬리가 5척이나 되는데 진귀하고 아름답다고 하였다.
대략 중국 사람들은 아름답기로는 마한의 긴 꼬리닭을, 털빛이 곱기로는 백제닭을, 고기맛이 좋기로는 평택닭을 으뜸으로 꼽았다.
특히 우리 나라 닭은 고기 맛이 좋기로 이름나서 성미 고약한 중국사신이 우리 나라에 와서 닭머리탕 대접을 받고는 그 맛에 홀려 할 말을 못하고 돌아갔다는 얘기가 있다.
약효도 우수하여 명나라의 본초학자 이 시진은 <본초강목>에서 '중국사람들은 조선닭이 좋다하여 이를 구하러 조선으로 나들이를 간다'고 기록하였다.
조선닭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닭들의 시조가 되었는데, 일본 사람들은 조선 닭의 후손들을 열여덟가지로 분류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일본의 토종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꼬리 길이가 5미터가 넘는 긴꼬리닭, 울음소리가 25초 동안이나 지속된다는 동천홍(東天紅) 같은 닭들이 모두 조선닭의 후예이다. 우리 나라 닭은 그 가짓수도 많아 대략 20여 종쯤이 있었던 것 같으나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은 두세 종뿐이다. 옛날에는 침계라는 아주 작은 닭이 있어서 속이 빈 베개 속에 이 닭을 넣고 자면 자명종처럼 울음소리로 새벽을 알려 준다고 했고, 고려시대에는 궁중에서 세 종류의 닭을 길렀다고 했다.
시계가 없던 때라 닭울음으로 시간을 알았는데 일명계, 이명계, 삼명계로 부르는 닭이 있어 이 닭들은 저마다 자시와 축시와 인시에 정확하게 울어 시간을 알렸다고 한다.
이것 말고도 훌륭한 싸움닭이 조선에 많다는 기록도 있다. 이같은 진귀하고 우수한 닭들이 하나도 옳게 전해지지 않은 것은 퍽 애석한 일이다.
왜정시대 거치며 토종닭은 자취를 감춰
우리 나라의 재래종 닭이 점차 자취를 감춘 것은 일본의 침략과 때를 같이 한다. 간악한 일본인들은 한?일합방 이전부터 조선의 재래종 가축과 곡물들의 씨앗을 말살하려는 종자멸렬 정책을 폈다.
한일합방 직전에 우리 나라에서는 일본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권업모범장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일본에 많이 보급되어 있던 백색 레그혼과 나고야, 플리마종을 들여와 민간에 나누어 주고 기르도록 장려했다. 그러나 곧 나라가 망하고 일본이 우리 나라를 다스리게 되자 뜻있는 백성들과 우국지사들이 궤그혼종과 나고야종을 왜닭이라고 부르며 일본 사람을 보듯이 싫어했고, 울긋불긋한 조선닭을 기르던 사람들이 '본디 흰 닭은 귀신으로 둔갑을 잘 한다'는 말을 퍼뜨려 사람들이 개량종 닭을 싫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알을 많이 낳고 덩치가 큰 개량종 닭은 차츰 그 숫자가 불어나 1930년대에 6백만마리, 2차대전 무렵에 7백만 마리로 늘어났다. 1957년에 나온 한 통계에 따르면 나라 안에 있는 1천4백만마리의 닭 가운데 조선닭이 6백만마리쯤이고 개량종 닭이 8백만마리쯤이나 되어 개량종 닭이 65%를 넘게 차지했다.
1960년대 이후 양계 봄을 타고 조선닭은 급격히 줄어들어 지금은 나라 안에 순수한 혈통을 지닌 재래종 닭은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할만큼 그 씨가 끊기게 되었다.
토종의 우수함과 중요성을 뒤늦게 서야 깨달은 요즈음에 와서 토종닭 사육에 힘을 쏟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유원지 같은 곳에 토종닭을 요리해 준다는 글을 써 붙인 음식점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으나 요즈음 그 사람들이 '토종닭'이라고 내세우는 닭을 우리 조상들이 수 천년 전부터 길러 오던 재래종 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거의 모두가 재래종 닭파 개량종 닭 의 잡종인 '튀기'들일 뿐이다.
母性 강해 몸바쳐서 새끼 돌보는 어미 닭
조선닭은 그 성질이나 생김새가 개량종 닭과는 사뭇 다르다. 개량종 닭은 어느 종류거나 알을 제대로 품지 않고 새끼를 잘 돌보지 않는 편이지만 조선닭은 새끼 욕심이 많아서 알을 품으면 매우 열심이고 병아리가 깨어 나오면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지극하다고 할 정도로 돌본다.
'암탉이 제 새끼를 품안에 모으듯 한다'는 말은 지극한 모성을 상징하는 말이다. 다산 정약용도 조선닭의 모성보호본 능에 감격하여 '어미 닭과 병아리'라는 시를 지었다.
목털은 곤두서서
고슴도치를 닳았고
제 새끼 건드리면
꼬꼬댁 쪼아대네…
낟알을 찾아내면
쪼는 체만 하고
새끼 위한 마음으로
배고픔을 참네
낟알을 찾아내면 쪼는 체만 하고 새끼가 먹도록 남겨 둔다는 표현은 정약용의 관찰력이 매우 예리하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당시 엄격한 유교사회에서 닭의 모성이 윤리의식을 고취시키는 한 상징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농촌에서 병아리를 가장 많이 해치는 것은 쥐와 새매와 까마귀다.
특히 까마귀는 사람 죽은 곳에 나타나는 불길한 새이기도 하려니와 병아리를 잘 나꿔 채는 얄미운 새이기도 하다. 어쩌다 병아리를 거느린 어미 닭이 까마귀를 발견하면 급하게 새끼들을 불러 품안으로 모으거나 안전한 집안으로 피난을 시키지만, 어미 말을 안 듣는 병아리가 있어 까마귀가 낚아채는 일이 생기면, 어디에 그런 힘과 민첩함이 숨어 있었던지 대번에 하늘로 치솟아 크게 싸움을 벌인다. 사람보다 되려 새끼에 대한 사랑이 더한 짐승이 조선닭이 아닌 가 싶다.
암탉의 새끼 욕심보다 더 자랑할 만한 것이 수탉의 고운 생김새와 맹렬한 투쟁 정신이다. 개량종 닭은 벼슬이나 몸짓만 달랐지 암컷이나 수컷이나 털빛이 비슷하지만 조선닭은 암탉과 수탉의 털빛이 유별나게 다르다. 암탉은 꼬리털만 좀 검고 몸 털은 황토색에 밤색 점이 박힌 단조로운 빛깔이지만 수탉은 오색이 찬란하여 장끼와 견줄 만큼 아름답다. 벼슬은 주홍 빛 맨드라미처럼 우뚝하고 목에는 붉은 빛과 노랑 색 털이 적당히 어울려 싸였고 몸은 갈색 털로 덮여 있다. 날개 깃은 까만 색이고 목털과 비슷한 색깔의 털이 날개 깃을 감싸고 있다. 꼬리털도 날개 깃과 같은 빛깔이면서 그보다 훨씬 길고 찬란하게 아름답다.
이놈은 몸을 치장한 만큼 암컷에 대한 욕심이나 정력도 대단하여 암탉 열 마리쯤을 거느리고도 이웃집 암탉을 넘보고 먹이나 우렁찬 복청으로 유혹하기 일쑤다. 또 제 암컷을 넘보는 다른 수탉을 만나면 온통 피투성이가 될 만큼 치열한 싸움을 벌여 기어이 승부를 보고야 마는 지독한 싸움 근성도 가졌다.
고소하고 졸깃졸깃한 고기 맛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이란 속담이 있어 서로 무관심함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지만 조선닭은 제 식구들을 잘 알아본다. 어쩌다 낯선 닭이 제 집에 들어오면 온 집안 닭들이 다 달려들어 금새 피투성이로 만들어 버리고 낯을 익힐 동안에는 며칠이고 기를 못 펴게 텃세를 부린다.
고기가 귀했던 옛사람들에게 조선닭은 우리 민족이 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던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따로 모이를 주지 않아도 마당이나 집 주변을 쏘다니며 지네 굼벵이 지렁이 메뚜기 구더기 따위의 벌레와 솔씨 등 갖가지 곡식의 낱알과 식물의 씨앗들을 주워 먹으며 자라서 살이 호지게 붙은 조선닭. 가난한 서민들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고기 밑천이었다.
그 때문에 손님이 오면 닭을 잡아 대접했고 며느리가 아들을 낳으면 수탉을, 딸을 낳으면 암탉을 잡아 미역국을 끓여 먹이는 풍속이 있었다. 조선닭의 고기 맛은 요즈음 많이 먹는 양념통닭이나 캔터키프라이드치킨 따위와는 견줄 수도 없을 만큼 맛이 있었다.
최근에는 개량종 닭의 고기 맛을 좋게 하기 위해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먹이지 않고 인삼 해초 비타민 같은 특수사료를 먹이고 철망에서도 해방시켜 놓아먹인 닭과, 동맥경화의 원인이 되는 콜레스테를의 수치를 낮춘 특수계란 따위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것들의 맛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조선닭을 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 없는 토종닭, 연변에는 많더라
조선닭은 덩치는 작지만 고기 맛이 고소하고 담백하며 졸깃졸깃한 맛이 일품이다. 중국 연변에 사는 조선족들은 아직까지 개량종 닭보다 조선닭을 많이 기르고 있는데, 연변대학의 류충걸 교수는 "연변에서 조선닭을 먹다가 한국에 와서 닭고기를 먹어보니 맛이 없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
또 예전에 독일인 교수와 함께 조선닭을 독일식으로 요리해 먹어 보았더니 그 독일인 교수가 조선닭으로 요리한 것이 독일닭으로 요리한 것보다 맛이 휠씬 뛰어나다는 얘기를 하면서 토종 가축이나 곡식 야채 과일들의 맛이 다른 나라에서 난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이 '이 땅만이 가 진 신비이며 보물'이라고 했다.
토종계란 역시 노른자위가 개량종 알보다 많고 고소한 맛이 있어 연변에서는 토종계란이 훨씬 인기가 있다고 한다. 조선닭은 약으로도 신비하다고 할만큼 쓰임이 많고 효과도 좋다. 중국 사람들은 약용 닭은 조선닭이 제일이라 하여 일부러 우리 나라에 와서 닭을 자주 구하여 갔다.
<동의보감>에서는 붉은 수탉, 횐 수탉, 검은 수탉, 오골계로 나누어 각각 그 효험을 설명하고 있다.
붉은 수탉은 여자의 대하(帶下)를 다스리며, 몸을 보하고 독을 없애며, 상서롭지 못한 것을 물리치며 목을 매어 혼절한 것과 벌레가 귀에 들어가 생긴 병, 연주창을 다스린다고 하였고 횐 닭의 발톱과 뇌는 난산에 도움을 주고 검은 닭의 쓸개는 눈이 어두운 것과 피부병을 치료하며, 염통은 오사(五邪)를 다스리고, 벼슬의 피는 젖을 잘 나오게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검은 암탉의 날개는 어린아이가 밤에 우는 것을 고치고, 날갯죽지는 하혈을 막고 대머리와 부스럼을 고치며, 닭똥은 중풍으로 말을 못하는 증상을 치료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닭고기는 혈압이 높은 사람이나 심장병, 신염(腎炎), 간염(肝炎), 피부병이 있는 사람이 먹어서는 안된다. 대개 혈액형이 O형인 소양체질의 사람도 닭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몸에 열이 생기거나 풍(風)을 일으킬 수가 있다.
닭은 민간이나 전문 의약인들이 구급약이나 보신약으로 널리 다양하게 썼는데, 그 대략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토종닭의 귀한 약효
수탉의 벼슬은 익사한 사람을 소생시키는 효력이 있다. 벼슬을 잘라 나오는 피를 코 입 주위, 인중에 바르고 피를 목구멍으로 넘기면 곧 깨어난다.
닭벼슬의 피를 계관혈(鷄冠血)이라 하는데, 중국 문헌인 <본초비요>에서 크게 놀란 증세와 양기부족에 효과가 있고 몸 안의 독을 풀어 준다고 하였다.
닭벼슬은 정력제로 이름난 비약(秘藥)이기도 하거니와 어린이의 경기(驚氣), 갖가지 피부치 독창(毒瘡)에도 신기한 효과가 있다.
닭똥집 속의 노란 부분은 계내금(鷄內金)이라고 한다. 이것을 오래된 기와 위에 얹어 태운 다음 가루를 내어 먹으면 요도염이나 전림선염에 효과가 좋다. 부스럼 독창 종기 등에 발라도 잘 낫는다.
닭똥의 윗부분 하얀 것은 계분백(鷄糞白)이라 부르는데 토종닭의 계분백은 신장암, 심부전 ,신장염, 전립선염 등을 치료하는 신약(神藥)이 된다. 민속의학자 인산 김일훈 선생은 계분백에는 석회정(石灰精)이 있어 계분백과 신곡(神曲 : 누룩), 맥아(麥芽)를 함께 볶아 가루 내어 우려낸 물이 신부전 신장암 방광암 전립선암을 고치는 최고의 약이라 하였다(자세한 사항은 <신약본초>6백98~6백99, 7백83~7백84쪽 참고).
계분백을 불에 태우면서 그 연기를 생인손, 독창, 족지암, Qy루지 같은 곳에 쏘이면 환부에서 물이 흐르면서 신기하게도 효과가 크다. 이를 닭똥훈증이라 부르며 이 방법으로 치질 자궁암 등도 완치가 가능하다.
닭똥훈증 방법은 닭똥의 횐 부분을 태워 연기가 나면 양철통을 거꾸로 씌우고 양철통에 구멍을 내어 그곳으로 나오는 연기를 쐬는 것이다. 앞으로 난치병 치료에 연구 응용해 볼 만한 가치가 큰 치료법이라 할 수 있겠다.
자궁암 유방암을 닭똥 무더기 속에 마스크를 하고 속옷만 입고 들어가 목만 내 놓고 30분씩 땀을 내기를 3~5일쯤 해서 고쳤다는 사람이 있다. 아무튼 닭똥의 종기와 암종 치료효과는 신효하다.
여기에 쓴 것 말고도 닭이나 달걀을 이용하여 갖가지 질병을 고치는 방법들이 무수히 많다. 잘만 이용하면 닭 한 가지로 만 가지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그 쓰임이 다양한 것이다.
조선닭 되살리는 일 힘써야
아무튼 조선닭은 약용으로나 고기 맛으로나 다른 어떤 것으로 보건 그 가치를 함부로 말할 수 없을 만큼 우리 겨레에게만 주어진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러나 속담에 나오는 '소경 제 닭 잡아먹기'라는 말대로 우리는 씨닭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다 잡아먹어 버렸다. 닭의 수는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조선닭은 완전히 없어졌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절실한 일은 옛 조선닭과 가장 닮은 놈이라도 찾아내어 그것을 되살리는 일이다.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병지방리에 사는 이철규(62)씨는 할아버지 때부터 기르던 조선닭을 지금까지 보존해 오고 있는 사람이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또 그가 키우는 조선닭들이 널리 퍼져 우리 농촌 어디서나 아침이면 조선닭의 우렁차고 목청 좋은 울음소리와 함께 잠을 깨고, 새끼들을 오손도손 데리고 집 주위의 땅을 발로 파헤치고 있는 암탉을 흔히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낮닭 우는소리를 듣고 문득 큰 깨달음을 얻은 서산대사의 오도송(悟道頌)을 소개하며 졸필을 마치고자 한다. 원하노니 모든 사람들에게 이 짧은 닭 울음이 오도(悟道)의 기연(機緣)이 될진저.
털은 희었으나 마음은 안 희는 것
옛날 사람이 이미 말하였네
이제 닭이 우는소리를 듣고
장부의 할 일 모두 마쳤네
*시사춘추 정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