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과질환, 암, 심장질환
원인과 증세를 조화있게 파악하면 치료법이 보인다
한조해, 한동현(한일한의원 원장,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 445-2, 전화: (02)777-8501
한의학계에 투신해 평생을 인간의 질병과 싸우면서 부친은 늘 필자에게 말했다.
"의사는 아무리 임상체험이 풍부해도 처방하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 특히 침 시술은 급하게 하지 말고 서서히 시술해야 한다."
그렇게 당부하면서 당신은 불의에 당한 의료사고 경험담까지 털어놓기도 했다. 하루에 1백 65명의 환자를 진료하면서도 의료사고 한번 없던 그분도 평생 4-5차례 실수를 경험했다고 한다. 양방의 오진율이 절반에 가깝다면 우리 한의학의 오진은 10%대에 머물 것이라는 게 그분의 자부심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러던 부친에게 뜻밖의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 연전이었다. 어느 날 괴팍한 고소 사건과 관련해 용산경찰서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사건의 진상을 알고 보니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근 15년을 만성 소화기 질환으로 고생하며 허토를 일삼던 사람이 우리 한일한의원에서 한약을 지어먹고 고질병이 감쪽같이 나았는데, 그 환자가 "한일한의원에서 마약을 먹였다"는 이유로 고소장을 냈다는 게 아닌가. 너무 효험이 빨라 마약을 처방한 게 틀림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해명하기에 앞서 "그처럼 효험이 있는 마약이 있으면 제발 구해달라"
고 응수했다. 하지만 너무 바빴던 나머지 출두는 커녕 피고소사건을 그대로 며칠 잊고 지냈다. 나중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 환자가 스스로 소를 취하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적은 비용으로 질병을 고칠까만 생각하면서 지내다 보니 간혹 환자들에게서도 처방을 배울 수 있었다"는 게 부친의 고백이었다. 그러면서 "치병은 원인과 증세를 조화있게 파악하고 응용하는 데 그 오묘한 이치가 있다"고 늘 강조한다.
부친은 동의보감과 사상의학에 접하면서 집념으로 학문을 익혔다고 한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학구열을 불태운 끝에 국가시험자격 검정고시 8번째만에 합격했고 또다시 한의사국가시험 응시 3번만에 한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무려 11번의 도전으로 7년만에 이룬 집념의 개가였다. 그분은 예상문제집을 보라는 주위의 권고도 뿌리치고 오직 정도만을 고집한 채 학문을 하듯 동의보감을 독파했고 각종 의서를 집요하게 섭렵했다고 한다.
근면 성심 성의로 환자를 돌보아온 부친은 어느새 팔순에 접어들었다. 청소년시절 향학열을 해소할 길이 없었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당신은 주인의식을 갖춘 인재를 길러야겠다는 생각과 [아전인수하면 공사한다]는 생애의 지침에 따라 육영사업에 뜻을 두고 한일고등학교를 설립했다.
부친의 뜻대로 소수정예주의를 자랑하는 한일고등학교 재학생들은 전원이 무료로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젊음을 불태우고 있다. 그분은 학교 운영에 가급적 간섭하지 않고 자율운영을 권고하면서 재단 전입금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평생을 통해 의료사업으로 번 돈을 육영사업에 사심없이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천도교인이었던 조부의 영향을 받아 부친의 좌우명은 사인여천, 당신은 그 좌우명을 아들인 필자의 가슴에 깊숙이 심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즉 "사람을 [한울님]같이 높이 공경하라는 것"이었다.
그분은 필자에게 의술을 내려주기 전에 의덕부터 가르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사인여천 사상]은 의사가 의술보다 의덕을 베풀어야 한다는 필자의 신념에 커다란 줄리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수련의 시절, 환자가 오면 부친은 필자에게 진맥부터 시켰다. 비방은 선배나 동료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게 아니라면서 중간에 설명, 토의, 질의, 문답 등도 없이 "오감을 총동원하라"는 말뿐이었다. 진맥과 진단의 결과가 당신의 판단에 접근될 때까지 침묵을 지키곤 했다. 처음엔 그분이 원망스럽기도 했으나 필자는 차츰차츰 당신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고 나중엔 깊은 의술의 경지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의술과 의덕 뒤에는 언제나 진지한 자세와 끊임없는 탐구정신, 풍부한 임상체험이 밑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터득한 것이다. 참으로 평범한 진리이지만 필자는 그분의 침묵을 통해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부친은 항상 말했다.
"아픈 것은 서러운 일이다. 돈을 벌지 못하고 오히려 치료비를 쓰니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환자는 칼도마 위에 오른 고기와 같은 신세다. 그 점을 알고 환자의 입장에서 진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천도교 사상에 입각한 부친의 말씀을 귀가 닳도록 들어온 필자는 오늘도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혹시 오만하고 경솔하지나 않나 반성할 때가 많다.
필자가 알기로 부친은 평생 [깨어있는 모습]뿐이었다. 필자가 잠들기 전에는 하루같이 진료중이거나 의학서적을 읽고 있었으며, 필자가 잠자리에서 깨어나면 어느새 일어나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곤 했다.
그분은 육류를 거의 멀리 하고 소식을 즐겼다. 건강관리를 위해 단전호흡을 꾸준히 했으며 푹신한 침구에 거부감을 느꼈던지 언제나 사시사철 돗자리 위에서 취침하곤 했다. 필자가 알기로는 건강관리에 앞서 근검절약하고 심신을 수련하는 자세로 비쳐졌다. 당신은 젊은 시절의 가난을 끊임없이 반추하며 청빈한 생활을 후손들에게 항상 강조하곤 했다.
아직 젊은 나이에도 동년배에 비해 풍부한 임상경험을 갖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부친의 지대한 관심과 엄격한 체험교육 탓인지도 모른다. 수련의 시절이 고통스럽긴 했으나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개인적인 특혜요 행운이다.
93년 6월이었다. 양방병원에서 간암진단을 받았다는 칠순의 할아버지가 내원했다. 인천의 모 학교법인 이사장인 이 환자는 간경화 단계를 지나 이미 암으로 진전된 상태였다. 살 만큼 살았으니 이제 마지막으로 한방 치료나 받아보자는 게 환자의 창백한 소원이었다.
필자는 이 노령의 환자에게 처음부터 약 처방을 보류하고 7일 동안 [무즙]만 복용한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후 일주일이 지난 뒤부터는 본원의 고유 비방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양방병원의 검진을 계속하면서 93년 12월초까지 약 6개월간 가루약을 복용토록 했다.
가루약 복용이 끝나자 탕제로 변경시켰다. 체질에 맞는 음식물을 알려주고 반드시 선별해서 섭취하도록 권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치료 시작과 동시 호전되기 시작한 증상은 2년 남짓 지나면서 가득했던 [복수]가 점차 사라지고 환자가 원기를 회복하도록 만들었다. 걷지도 못하고 팔다리를 구부리지 못하던 노인이 이제는 국내외로 돌아다니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노인환자는 우리 한의원에 올 때마다 "양방 치료를 포기하고 한방에 의존했더니 겨우 살아 남았다"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88년 12월이었다. 교회장로라는 김00(남. 당시 54세.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씨가 "양방병원에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얼굴로 나타났다. 눈에는 황달증세가 심했고 배는 복수가 차올라 임신부의 그것을 능가하고 있었다.
첫날은 [황토]를 달인 물에다가 한약 한 첩을 처방하면서 치료를 시작했다. 3개월 남짓의 치료기간을 거친 이 환자는 6년이 넘게 살아 있다. 지금은 특별한 치료비 부담은 없이 암 초기와 유사한 증세로 의심될 때만 부정기적으로 내원하고 있을 뿐이다.
황토는 본초강목에서도 강력한 해열 해독 작용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단방으로도 가처럼 좋은 약재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황토에서 추출한 물은 암을 비롯 각종 소모성 질환, 호흡기 질환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있다.
92년 3월이었다. 충남 태안에 사는 엄00(당시52세)씨가 내원했다. 좌측 유방암으로 진단을 받은 그녀는 방사선 치료를 받다 말고 이젠 지쳐서 한의원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분은 용하다고 알려진 전국의 의료기관을 누비다가 결국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고 다 죽어가는 노인의 몰골로 나타났다.
첫날엔 약 3첩을 주고 이틀간 복용토록 했다. 보조치료제로 닭의 모가지를 잘게 빻아서 환부에 붙이도록 하고 체질에 맞는 야채를 골라 그 즙을 꾸준히 마실 것을 권유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약을 먹는 것을 비롯해 보조치료제와 식이요법 등 3가지 치료법을 병행했더니 요즘은 유방의 멍울이 없어지면서 발병 초기의 상태로 호전되었다.
그 이외에도 병원에서 불치 판정을 받고 한방요법으로 약 2년만(90년 6월-92년 4월)에 기적적으로 완치를 경험한 간암 환자 김00(당시 53세. 대전시 거주)씨의 치험 사례등도 잊을 수 없다.
방사선 치료는 암세포의 확장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반면에 정상적인 세포를 궤멸시키는 부작용도 있어, 때로는 간을 보호하고 보완하는 보법으로 더불어 회복하는 한방치료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극히 예외적이긴 하지만 보익지제를 첨가한 처방이 간질환에 좋은 효과를 얻고 있다.
소화기 계통 질환, 전간(간질), 중풍, 신경성 질환(조울증, 광견병), 불임증 등의 질병치료에 양방보다 한방이 우수하다는 것은 속속 입증되고 있다. 각종 종양 치료에도 역시 한방이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은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
"한약을 먹으면서 간이 손상된다"는 잘못된 속설은 이제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 유언비어는 간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간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한약의 특효를 알지 못하는 데서 나온 것으로 일부 의사들의 험담일 수도 있다.
오진과 치료실패의 책임을 서로 전가하려는 데서 나온 발상인지도 모르겠다.
"임신 중에 한약이 좋지 않다"는 주장도 이제는 없어져야 한다. 산후는 물론 임신기에도 한약을 잘 쓰면 그처럼 좋은 경우는 아마 없을 것이다. 산모와 태아를 보호하고 전신적인 건강을 도모하는 효과는 한방만이 자랑하는 장점이다.
불임증을 치료하는 데에도 한방만큼 우수한 의학도 없다.
양방에서는 불임 여성에게 치료 불가, 원인 불명, 정상 판정 등으로 무조건 기다려 보라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3년을 넘게 기다려도 기대 난망이다.
한방에서는 대부분의 불임은 생식기에서 그 원인을 찾지 않고 다른 유해요인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방은 개별 국소 진단으로 자궁에 대해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지만 한방은 전신적인 종합진단을 보다 중요시한다.
예컨대 필자는 심장병이 있거나 심장이 약한 여성의 경우 난산과 불임 요인을 갖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때 아무리 국소적인 치료를 시도해도 효험이 없다.
심장 치료를 곁들여가면서 전신을 다스리지 않으면 근본적인 치료가 될 수 없다고 여긴다. 이것은 또한 우리 한방이 고집하는 불문율이다.
필자는 이러한 한방치료법으로 병원에서 고개를 젓는 불임여성에게도 1-6개월간의 치료 끝에 희망을 줄 수 있다. 그 동안의 치료 성과로 볼 때 그 완치율은 80%에 가깝다.
한약으로는 [팔물군자탕]에 소도지제, 순기지제, 파어지제, 보익지제 등을 적절히 가감한 처방을 즐겨 쓰고 있다.
불임치료와 곁들여 아들을 원하는 경우 체질 감별 후 특수 처방을 통해 아들 낳는 약을 투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탓에 2-3대 독자가 딸만 내리 낳는 등 부득이한 경우에만 극히 선별적으로 시술하고 있다.
이 모두 부친이 아니면 전수받지 못할 비방이요 치험사례들이다. 그래서 그 분은 필자의 은사이자 명의 중 명의가 아니겠는가.
부친과 같은 명의를 은사로 보내주신 하늘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